다음 글을 참조하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몸을 ‘육체자본’으로 만들기 위한 몸 사용 사례를 [보기1]의 다양 한 범주에서 찾아보고, [보기2]의 네 개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제시해 보시오.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 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 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갈라놓는 규율 기관들의 장벽은 이제 거의 고대 의 유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 이다. ‘~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해야 한다’에도 어떤 강제의 부정성이 깃들 어 있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이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 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활동사회라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 그 와중에 “브레인 도 핑”처럼 부정적인 표현은 ‘신경 향상’으로 대체된다. 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최근 에는 어엿한 과학자들조차 그런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외과의사가 신경향상제의 도움으로 좀더 정신을 집중하면서 수술할 수 있다면 실수도 줄어들고 더 많은 사 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신경향상제를 복용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다. 단 공정성만 보장하면 된다. 모두가 그런 약을 똑같이 구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만일 스포츠에서도 도핑이 허용된다면 경기는 약학적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약물 금지만으로 몸뿐만 아니 라 인간 전체가 하나의 성과기계가 되어 원활한 작동으로 최대의 성과를 산출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발전 경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핑은 단지 사회적 발전 경향의 결과일 뿐이다. 성과사회, 활동사회 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의 결핍과 함께 과도한 긍 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육체자본은 육체를 자본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인간이 스스로 부여한 가치는 지식, 도덕과 같은 내면적 가치와 제시문에서 주어진 [보기 1]과 같이 외면적 가치로 나뉠 수 있다. 나치 독일 이후 전후 수습과 민권 운동의 영향으로 바뀐 사람들의 인식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으로 연결되었고, 정부가 주도하는 보편적 복지가 나타났다. 이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내면적 가치의 향유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내면적 가치의 척도의 불명확함은 국가가 제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의무 교육 등)가 최저기준이 되는 원인이 되었고 인간은 내면적 가치의 향상을 넘어서서 외면적 가치의 향상을 추구하게 되었다.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초연결사회, 개방적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외면적 면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고 산업혁명으로 축적된 잉여자본을 외면적 가치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보강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식생활, 성장과 질병관리는 이러한 매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시이다.
식생활이 육체자본으로 만들기 위한 몸 사용 사례라는 것은 ‘건강미’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유전병과 각종 성인병의 발병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올바른 식생활’을 추구한다. 최종적으로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식생활은 성장과 질병관리라는 또 다른 육체자본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어릴 때 키가 클수록 골고루 잘 먹는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주고 자라서는 비율이라는 단어로 키가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보다 미의 기준에 더 부합하게 생각한다. 또한 질병관리는 보험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건강상태에 따라 사회는 건강을 하나의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건강의 척도로 질병관리를 보고 기록이 있을 경우 보험가입이 불가하거나 취업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 흔히 개인정보 제공 중 민감정보에는 건강관련 정보가 포함되는 데 이는 건강관리가 취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또한 질병관리를 잘할수록 비교적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신체자본’도 결국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특징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성장, 질병관리로부터 오는 사람들의 인식은 그 자체로 성과사회이다. 타인을 의식하고 식생활, 성장, 질병관리를 자신의 커리어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과가 과연 새로운 몸의 가능성을 제시하는지, 아니면 몸의 지나친 단련과 계량화로 피로하게 만드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식생활, 성장, 건강관리 등을 육체자본, 즉 가치가 된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인류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식생활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더욱 ‘잘’, ‘건강하게’, ‘친환경적으로’ 먹게 되며 이는 최종적으로 몸의 균형적인 성장, 지속적인 건강관리 불필요한 유전인자의 제거로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이런 인간의 활동이 반복되면 DNA의 각인이 일어나 인류의 생명은 연장되고 자연친화적으로 진화할 것이다. 또한 식생활은 성장, 건강관리와 연결되는데 이와 같은 각 육체자본과의 연결성으로부터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몸을 자본화하여 성과사회를 만들었지만 기업문화와 같이 성과를 강제하는 성과사회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또한 성과가 추상적이라는 점은 구체적인 커트라인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성과사회가 유발하는 피로, 우울징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개인의 몸의 역량강화로부터 오는 성취감과 인류의 진화라는 큰 틀에서 볼 때 긍정적인 인자로 작용한다는 점은 육체자본이 성과사회로 귀속되면서 오는 피로, 우울 징후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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